나와 함께한건축스토리텔링공모 수상작
시민들이 서울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애환을 기록하고, 도시의 얼굴이 되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서울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목적을 두어, 글과 영상, 사진,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을 자유롭게 표현한 공모작품 20점이 수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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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ESSAY] 니꼴라이 집 -- 정동 러시아공사관과 경향신문사 사이

본문

작품설명

· 수상자 : 손정희
· 건축물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15-1

아버지는 정동 경향신문에서 일하셨다.

어른이 되어 정동에서 근무하기 전에도 아버지는 그 근방인 경희궁 터에 자리한 학교를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집이 있던 종로에서 청계천을 따라 등교하셨다고 한다. 나도 경향신문 길 건너 고려병원 (지금의 삼성 중앙병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추첨 제비뽑기에 성공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엄마랑 아버지를 기다리던 곳도 경향신문사 앞의 한 커피숍이었다.


경향신문사 건물 뒤에는 문화방송 이름을 따서 지은 문화체육관이 있었다. 1981년까지는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이 한 회사여서 지금의 경향신문사 건물에는 방송국이 더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문화체육관 자리가 지금의 상림원 아파트인데 ‘영11(일레븐)’ 이라는 굉장히 인기 있었던 문화방송 쇼 프로그램을 그곳에서 녹화했다. 녹화하는 날엔 “와~”하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서 녹화방송을 보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문화체육관으로 올라가다 보면 크기는 작지만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은 하얀 건물 하나가 있었는데 그 건물이 옛 러시아 공사관이었다. 작은 교실만 한 네모반듯한 바닥에 높은 탑처럼 여러 층으로 올려진 하얀 색 건물, 속에서 레이스 옷을 입은 금발 머리 소녀가 나올 것만 같은 이국적인 건물. 누구도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인지 건물 앞엔 잡풀이 많이 자라나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때인 80년대 초반은 냉전 시대였다. 미국은 우리 편이고 소련은 북한 편이었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이 불참하니 대한민국도 불참했다. 러시아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였다. 이렇게 무서운 적성 국가인 소련의 조상 나라이니 건물만 만져도 잡혀갈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한편 정말 저 집엔 아무도 살지 않는 건가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누군가 저 건물 자리는 아직도 소련 소유라고 했다.


나름 책 좀 읽던 독서왕 어린이였던 나는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바로 그 하얀 건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복잡한 사연 때문에 고종 임금님이 1년이나 피하신 곳이라는데 저리 좁은 건물에 어찌 숨어 계셨을꼬 약간 걱정도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하얀 건물은 러시아 공사관의 일부이고 원래는 훨씬 큰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렵고 궁금한 공사관 건물 바로 옆 먼지가 풀풀 날리던 흙밭에 어느 날부터 한 가족이 닭장과 판잣집을 짓고 닭백숙을 팔기 시작했다. 아마도 당시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던 서울이나 경기도의 어떤 지역에서 밀리고 밀려 서울 정동에 닭들과 함께 등장하게 된 듯했다.


러시아 공사관 옆에 있다고 사람들은 그 닭집을 ‘니꼴라이 집’이라고 불렀다. 당시 한국 사람이 아는 러시아 이름이 니콜라이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라고 닭백숙집을 짓기엔 부담스럽지 않은가.


나무와 철사로 얼기설기 지어진 닭장과 언덕 위인 러시아 공사관 옆의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에 식당은 왠지 시골의 닭백숙집 분위기가 났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할 일이지만 닭장에 사육하던 닭을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도살해서 백숙으로 요리해서 내오는 식이었다. 21세기 서구의 미식가들이 갈망하는 팜투 테이블 (Farm-to-Table, 원산지에서 식탁까지 최단 시간, 최단 거리를 목표로 하는 것) 정신이 이미 1980년대 초반 서울에서 구현된 것이다. 간판은 당연히 없었고 큰 나무옆에 닭장과 판자집같은 작은 부엌이 있었다. 손님들이 앉는 자리는 흙밭에 놓인 간이 식탁과 플라스틱 의자가 전부였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개업하자마자 폭주하는 민원으로 바로 영업정지가 확실하지만, 그때는 서울 한복판 전국 규모의 언론사 사옥 바로 뒤에 하얀 닭털 무성히 날리는 닭장과 수도 시설도 변변히 없는 무허가식당이 영업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오죽 사정이 급하면 여기다가 닭 잡는 집을 열었을까 하는 딱한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당시 주위에서 일하던 신문사 사람들은 고발대상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맛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모처럼 쉬는 날인데도 자상하기로 대한민국 상위 1%였던 아버지는 우리 3남매를 굳이 회사 건물 옆의 그 니꼴라이 집에 데리고 가셔서 닭백숙을 시켜주셨다. 말하자면 맛보다는 문화체험을 시켜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 닭들이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그날 먹었던 닭백숙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니꼴라이 집 가족들이 브라질에 이민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브라질에서도 닭을 팔까? 거기서는 좀 편안한 생활을 할까?


니꼴라이 집에서 닭백숙 먹은 지 삼십 년 남짓 세월이 지났다. 소련은 다시 러시아가 되고 한국은 러시아와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니꼴라이 집이 있던 자리는 흙밭이 풀로 덮이고 예쁜 공원이 생겼다. 그사이에 나는 멀리 외국에서 살 게 되었고, 그 사이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몇 주 전 러시아 공사관 건물에 가보았다. 보수 공사 중이라 건물을 볼 수는 없었다. 11월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니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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