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등록문화재이기도 한 서울시립미술관(SeMA, Seoul Museum of Art, 1928)은 서울시 중구 서소문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자칫 보수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내부 전시실들은 크기와 높이, 마감 등을 다채롭고 자유롭게 구성하였다. 그중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투명한 계단 타워이다. 이 계단 타워 덕분에 관람 동선이 수직‧수평으로 모두 원활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전망대에서는 미술관 주변의 역사적인 경관을 볼 수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재판소였다가 광복 이후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었는데,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엄정한 법을 다루던 건물이 자유로운 예술의 장으로, 식민지배의 상징이 서울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 2006년 리모델링을 통해 세 개의 특징적인 벽을 만들었다. 건물 정면의 아치를 중심으로 정동 길과 면하는 주출입구와 중앙 구조체는 그대로 보전하고 양측 외벽은 해체 후 기존 외벽 타일의 질감 및 색채와 유사하게 복원했다. 지금의 ‘과거의 벽’이다. 창호도 원래의 이미지를 재현하려 하였고, 배면은 단순한 형태로 처리해 여백의 미를 살렸는데, 이 배면의 벽이 ‘미래의 벽’이다. 전면의 과거가 로비의 현재를 지나 배면의 미래로 흘러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현재의 벽’은 로비에 있다. ‘현재의 벽’을 지나 ‘미래의 벽’으로 향하는 사이에 있는 중앙 홀은 수직으로 열려 있어 자연광과 하늘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건축물은 건축가가 설계하지만 그것에 생명을 더하는 것은 시간과 사람임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